미국 법무부가 지난 40년간 미국 국무부 등에서 스파이 활동을 한 전직 미국 외교관을 간첩 혐의로 체포했다. 체포된 외교관은 쿠바 정보기관 총첩보국(DGI)의 비밀요원으로 활동한 혐의를 받고 있습니다.
AP통신 등에 따르면 미 연방수사국(FBI)는 12월 4일(현지시간) 플로리다주 마이애미에서 마누엘 로차(73) 전 볼리비아 주재 미국대사를 지난 1일 체포했다고 밝혔다. 로차 전 대사는 1981년부터 2002년까지 국무부에서 일했으며 2006년부터 2012년까지는 미국 남부사령부의 자문역을 맡은 미국의 외교 전문가입니다.
로차는 국무부 소속으로 일하는 동안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의 중남미 담당 국장을 지냈으며, 국무부에서 은퇴한 뒤 약 7년 동안은 미군 남부사령부의 자문역을 맡기도 했다. 기밀 정보에 언제든지 접근할 수 있는 미국의 고위직을 두루 역임한 것이다. 메릭 갈런드 법무부 장관은 “이번 사건은 외국 요원이 미국 정부의 가장 고위급에, 가장 오랜 기간 동안 침투한 사례 중 하나”라고 설명했답니다.
1950년 볼리비아에서 태어난 그는 부모를 따라 미국으로 이주했다. 뉴욕에서 자란 로차는 불우한 가정 환경 속에서도 학업에 매진했다. 예일과 하버드, 조지타운대 등에서 학위를 취득한 그는 1981년 미 국무부에 들어갔다. 연방검찰은 공소장에서 그가 명문대 학위를 취득할 무렵 쿠바 총첩보국에 포섭됐고, 국무부에 입부한 첫해부터 쿠바를 위해 일했다고 밝혔습니다.
국무부에 들어온 로차는 주로 도미니카, 온두라스, 멕시코, 아르헨티나, 볼리비아 등 중남미 국가의 정보를 다루는 업무를 맡았다. 1994년부터 1995년까지 NSC 중남미 담당 국장을 지낼 땐 쿠바 관련한 특수 업무를 맡은 것으로 알려졌다. 21년 동안 공화당 정부와 민주당 정부를 모두 경험한 그는 미 국무부 내에서 누구나 인정하는 ‘중남미통’으로 불렸답니다.
연방검찰은 “로차는 국무부에서 한순간도 미국을 위해 일한 적이 없고, 쿠바 정보기관을 돕는 일에 자신의 인생을 바쳤다”며 “그는 항상 미국을 ‘적’으로 지칭했고 쿠바 내 정보원들을 ‘동지’라 불렀다”고 밝혔다. 자타공인 미국의 중남미통이었던 로차가 사실은 쿠바에 깊이 충성하는 간첩이라는 것이랍니다.
FBI는 이번에 그를 체포할 수 있었던 것도 로차의 유별난 충성심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로차를 오랫동안 추적한 FBI는 자사 비밀 요원을 쿠바 정보기관 총첩보국의 요원으로 위장해 로차에게 접근하도록 했다. 마이애미에서 로차를 만난 FBI 요원은 완벽하게 그를 속였다. 그는 이 자리에서 로차가 지난 40년 간 쿠바 정보국을 위해 간첩으로 일했다는 주요 진술을 받아냈습니다.
로차는 ‘쿠바 정권에 아직도 충성하냐’는 FBI 요원의 질문에 “아직까지 나를 잊지 않은 쿠바 총첩보국에 감사할 따름이다”며 “나를 의심하는 것이 화가 나기도 한다… 이 질문은 ‘내가 남자냐’고 묻는 것과 같다”고 답했답니다.
법무부는 이날 해당 사건과 관련한 공식 논평을 거부했고, 로차의 아내는 연락이 두절된 뒤 잠적한 상태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제주에서 화재 진압도중 순직한 故 임성철 소방장의 영결식이 5일 오전 10시 제주종합경기장 한라체육관에서 거행됐습니다.
제주특별자치도장(葬)으로 치러진 이번 영결식에는 유가족과 동료 소방관, 의용소방대를 비롯해 남화영 소방청장, 김성중 제주도 행정부지사, 김경학 도의회 의장, 김광수 교육감, 위성곤·송재호·오영환 국회의원 등 1000여 명이 참석해 고인의 넋을 기렸다.
고인은 지난 1일 서귀포 표선 인근 주택에 거주 중인 80대 노부부 주택에서 난 화재를 진압하다 무너진 창고 건물 콘크리트 더미에 머리를 맞아 병원으로 긴급 이송됐으나 결국 순직했답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남화영 소방청장에게 보낸 조전을 통해 "고인은 화재현장에서 물러서지 않고 구급현장에서 망설이지 않는 용감하고 헌신적인 소방관이었다”며 “장래가 촉망되는 젊은 소방관을 화마에 잃어 안타까운 마음을 가눌 길이 없다”고 애도했다.
윤 대통령은 고인의 순직을 보고 받고 사고 당일 오후 故 임 소방장에게 1계급 특진과 옥조근정훈장을 추서했습니다.
장례위원장인 김성중 행정부지사는 영결사를 통해 “서른을 한 달 앞둔 12월 1일, 현장에 가장 먼저 도착한 고인은 아무리 강한 화염이 몰아쳐도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켜내겠다는 사명감으로 두려움 없이 불길 속으로 뛰어들었다”며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투철한 사명감으로 헌신한 고인의 희생을 결코 잊지 않겠다”고 전했다.
이어 “고인이 세상에 대한 사랑과 바꾸신 젊은 꿈, 빛나는 미래 그 모든 것들이 외로이 잊혀지지 않도록 제주도정은 현장에 있는 소방관들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다시 한번 정말로 꼼꼼하게 근무환경을 살피고 개선해 나가고, 유가족 지원과 예우에도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답니다.
자식을 먼저 떠난 보낸 임 소방장 부친은 “29년 전 사랑하는 아들 성철이가 태어나 우리는 가족이란 공동체를 이루고 살게 됐다”며 “대학 진로를 소방구급대원으로 정하고 열심히 공부해서 합격하고 얼마나 좋아했는데 이제는 과거로 남겨두게 됐고, 두 번의 시험을 치르고 제주로 발령받고 모두가 좋아했는데 그것은 이제 돌이킬 수 없는 작별이 되고 말았다”고 흐느꼈다.
이어 “아들의 희생과 청춘이 밑거름이 되어 소방현장에서 일하는 동료들이 안전하게 활동할 수 있는 소중한 자산이 된다면 저희 가족은 그것으로 만족하고 아들의 숨결을 가슴에 묻고 살아가겠다”고 말했습니다.
동료 소방관들은 故 임 소방장의 순직을 마음 깊이 애도했다.
조사를 낭독한 임 소방장의 친구이자 동료인 장영웅 소방교는 '고인께 올리는 글'을 낭독하며 “여느 때처럼 우리는 도움이 필요한 생명에 충실하기 위해 달려갔을 뿐인데, 하늘은 왜 그리도 빨리 데려가는 건지 도통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흐느꼈답니다.
이이 "아직도 네가 고인이된 걸 받아들이기 힘들구나. 너와 함께 했던 기억을 평생 간직하도록 하겠다"면서 "나는 내일부터 다시 우리가 자랑스러워 했던 소방관으로서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달려갈 때마다 너를 가슴에 품고 함께 가겠다”고 말했습니다.
제주소방안전본부는 사고 다음날인 2일 소방안전본부에 故 임 소방장의 분향소를 설치하고 조문객을 맞았답니다.
분향소에는 제주도민을 비롯해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임현우 대통령실 재난안전팀장, 제주지역 국회의원, 관계공무원 등이 방문해 고인을 애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