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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완용 후손 죽음 본관 고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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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11. 6. 00:44
이완용은 1926년 죽기 전 아들에게 "내가 상황을 보니까 앞으로 미국이 득세할 것 같다. 그러니 너는 친미파가 되거라"라고 전했습니다. 이완용은 유언을 남긴지 얼마 되지 않아 사망했고, 그의 장례식에는 1300여 명의 조문객이 참석했다고 전해집니다.
이완용은 매국노인 을사오적 중 한 명으로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박탈한 을사조약 채결, 고종황제 강제 퇴위, 정미7조약, 한일합방조약 등을 체결한 인물이랍니다. 이완용의 재산은 광본 전까지 여의도 면적의 7,7배의 부동산을 소유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완용은 전국 각지에 땅을 안 갖고 있는 곳이 없었다고 할 정도로 많은 땅을 소유한 것으로 알려졌답니다. 이후에 러일 전쟁 이후 전북에 진출한 일본인들에게 비싼 값에 팔아넘기기 위해 전북 땅을 집중 매입한 것으로도 알려졌답니다. 이완용 후손들은 지난 1992년 서울 북아현동에 있는 땅이 자기들 땅이라면서 국가를 상대로 소송, 승리하면서 이완용의 재산을 대물림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답니다.